용주사
경기도 화성시 병점구 송산동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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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래 (공공데이터 그대로)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때는 31본산(本山)의 하나였는데, 이곳에는 원래 854년(신라 문성왕 16)에 세운 갈양사(葛陽寺)가 있었다. 952년(고려 광종 3)에 병란으로 소실된 것을 조선 제22대 정조(正祖)가 부친 장헌세자(莊獻世子)의 능인 현륭원(顯隆園)을 화산으로 옮긴 후, 1790년 갈양사 자리에 능사(陵寺)로서 용주사를 세우고 부친의 명복을 빌었다. 당시 이 사찰을 세우기 위하여 전국에서 시주 8만 7천 냥을 거두어 보경(寶鏡)으로 하여금 4년간의 공사 끝에 완공하게 하였는데, 낙성식 전날 밤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꿈을 꾸고 용주사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창사(創寺)와 동시에 팔로도승원(八路都僧院)을 두어 전국의 사찰을 통제하였으며, 보경에게는 도총섭(都總攝)의 칭호를 주어 이 절을 주재하게 하였다. 경내에는 이 절의 전신인 갈양사의 유물인 7층의 석조사리탑과 6개의 돌기둥으로 지탱하고 있는 천보루(天保樓)가 있는데, 그 안에 들어서면 대웅보전(大雄寶殿)과 석가삼존불(釋迦三尊佛)이 있다. 그 뒤쪽의 후불탱화(後佛幀畵) 역시 석가와 여러 보살 및 10대 제자상들인데, 이를 김홍도(金弘道)의 그림이라고도 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이 글은 행정안전부 전통사찰 공공데이터의 유래연혁 필드를 그대로 옮긴 것이고, 저희가 보태거나 고친 문장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