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룡사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용전1길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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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래 (공공데이터 그대로)
신라문무왕대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알려지고 있으며 지금의 건물은 그 후대에 중수한 것이다. 구룡산 자락에 있는 반룡사는 현재는 대웅전과 가건물인 요사채만이 잇는 아주 작고 쇠락한 모습이다. 신라왕을 비롯하여 왕후 왕녀가 이 절을 자주 찾았는데 드 때 경주에서 왕이 넘어 왔다고 전하는 고개를 지금도 왕재라고 부르고 있다. 고려 문종시대에는 화엄 천태종의 고승으로 운문사 주지를 지낸 원응 국사가 이곳에 주석하며 대중창을 하여, 고승 대덕이 구름처럼 모이고 석학 명사가 줄을 이어 찾아들었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에 보면 고려중기의 대표적인 석학 이인로 선생도 반룡사를 찾아"봄은 가도 꽃은 아름답게 피어있고 맑은 하늘 깊은 골에 간직한 마음을 비로소 느끼게 하네."라는 감회어린 시를 남긴 바 있다. 고려말기의 몽고의 행패와 어지러운 정치시대를 거쳐 조선에 들어서 쇠퇴의 일로를 걷다가 급기야는 임진왜란을 만나 대가람이 하루 아침에 소실되었다. 그 후 조선 인조 19년(서기 1641)에 계운·명언·대사가 중창하였으며, 부속암자로 내원암·벽운암·대적암·은서암·아적암 등 다섯 암자도 중창 또는 창건되었다.
이 글은 행정안전부 전통사찰 공공데이터의 유래연혁 필드를 그대로 옮긴 것이고, 저희가 보태거나 고친 문장이 없어요.